- 피에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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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로마에 가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
다시 로마에 가고 싶은 가장 큰 이유
바로 이 미켈란젤로의 피에타가 있기때문입니다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하면 성모 마리아를 볼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진을 담으며 내가 사진을 알게 된것을
진심으로 감사할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이 사진을 다시 보며 내가 느끼는 감동역시 그러하며
이 사진으로나마 여러분과 함께 다시 이 느낌을
공유할수 있다는것 자체 역시 감사합니다
명작이란 작품들을 보면
사실 설명이 필요가 없는것 같습니다
종종 저는 혼자 박물관이나 전시회 혹은 극장을 다니곤 합니다
국립 박물관에 있는 반가사유상만 보며
2시간을 그냥 보낸적도 있답니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피에타상을 보며
난 그저 카타르시스에 빠지며 멍해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이곳엔 다른 일행들도 함께 있어 일정에 따라 움직여야 했기때문에
아주 오랜 시간을 할애 할수도 없었고
사진을 찍는 사람으로써 어찌 하면 주어진 환경 조건하에 이 모습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담아낼지 고민에 빠져들었답니다.
사진으로도 담아내기가 어려운데
체코의 한 조각가가 이 작품처럼 조각이 되지 않자 쇠망치를 던져
손상을 입힌 그 마음이 느껴지는것도 같았답니다.
이사진은 있는 그대로가 아닌 그냥 저의 관점에서 보인
느낌을 같이 공유한다고 생각하시면 될것 같습니다.
사진이란 기술이 나오지 않고 제가 조각가였다면 어쩌면 저도.....
이 피에타 상은 미켈란젤로의 작품 가운데
그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유일한 작품이다.
자신의 재능에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던 미켈란젤로는 사람들이
작품을 보고 뭐라고 평가하는지 궁금하여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 몰래
얘기를 듣던중 무척 자존심이 상하게 된다.
사람들이 피에타상을 보며 아낌없는 찬사를 하지만 단 한마디도 미켈란젤로에 대한
언급은 없었기 때문이다.
24세의 그는 아직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정도의 명성을 쌓지 못했던 부분도 있었다.
이에 젊은 혈기의 미켈란젤로는 베드로 성당이 폐쇄되는 석양이 지는 시간을 기다려 정과 망치를 들고
'내 작품에 마무리 할게 있다'라고 가드에게 예기한후 성모마리아의 어깨 띠에
미켈란젤로가 만들었다는것을 알아볼수 있는 서명을 해둔것이다.
뿌듯한 마음으로 성당을 뒤로하고 돌아 나오는 미켈란젤로의 앞에는 베드로 성당 광장에
펼쳐진 아침을 밝히는 여명과 어우르는 대자연의 풍경을 보고 그만 주저 앉을 수 밖에 없었다.
이 아름다운 대자연을 창조하신 조물주는 그 어디에도
'내가 만들었다'라는 서명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에 미켈란젤로는 한낫 자신의 제주를 뽐내려했던 스스로를 돌아보며 무한한 자괴감에 빠진다.
그 후로 미켈란젤로는 자신의 어떤작품에도 자신이 만들었다는 서명을 하지 않는다.
이리하여 미켈란젤로의 초년작 '피에타'상에는 거장 미켈란젤로의 유일한 서명이 들어가게 된다.
성모 마리아의 어깨 띠에는 '피렌체인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제작(MICHEL. AGELVS. BONAROTVS. FLORENT. FACIEBAT)'
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섬세하기 이를데 없는 미켈란젤로의 조각 기법에 대한 관찰을 떠나서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마음과 그 어머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없이 편하하게만 잠들어 있는 예수 그리스도
무엇인가 간절히 채워지기만을 바라고 있는 왼손과
인간이 당할수 있는 수많은 고통을 뒤로하고 편히 잠들어있는 아들을
바라보고 있는 성모마리아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형언할수 없는
감정과 느낌이 엄습한다.
큰 괴로움속에 비통함을 감추고 자애로운 표정으로 자식을
바라보는 혹은 상념에 잠겼으나 안식을 주는것 같은..
말로 어찌 표현할수가 없다.
피에타란 자비를 베푸소서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 바티칸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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